이영식 목사는 평생을 나환자·장애자·교도소 수감자에게 바쳤다. 그의 삶 속에는 장애인을 교육시키고 보호하고 이를 위한 지도자를 양육해야겠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영식 목사는 일본의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카가와 선생은 일본의 성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그래서 이영식 목사의 가족들은 장애자를 수용했던 라이트하우스(Light House)원에서 그들과 같이 지내며 동고동락하였다. 또 이태영 초대 총장은 장애자를 위한 학교 설립에 대한 의지를 이미 일제의 한국 강점 기때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이영식 목사가 요시찰인으로 일제의 감시 하에 있는 탓에 그 뜻을 펴지 못하였음을 "대구맹아학원, 즉 오늘의 대구대학교를 창설할 그러한 이념이라 할까 사상이라 할까 신앙이라 할까 포부라 할까 하는 것이 싹텄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일제하에서는 요시찰인에 대해서는 심한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영식 목사는 이태영 초대 총장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독립투사이지만 그것이 민족의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입신양명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이영식 목사는 오히려 그늘진 곳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대구대학교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1919.3.1 독립운동으로 복역
1927.4 대구 서문교회 목사 시무
1946.4 대구 맹아학원 설립. 원장 취임
1956.6 한국사회사업대학 설립, 초대 학장 취임
1969.5.16 민족상 교육부문 본상 수상
1977.11 해외 희생동포 위령 사업회 고문
다큐멘터리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성산 이영식 목사”
“내가 죽거들랑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종교 의식을 조금도 가지지 마라.”
“그냥 갖다 내버려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감동시킨 한 사람 추모합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성산 이영식(대구대학교 설립자)
(어머니 김덕희 여사의 행상 보자기, 대구대학교 특수교육역사관 전시)
행상으로 키워낸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찢어질 듯한 가난을 딛고 당신은 큰 뜻을 품었습니다.
‘세상을 구제할 목사가 되고 싶다’
(이영식 목사가 다녔던 계성학교)
열아홉, 부해리(Henry M.Bruen) 선교사의 도움으로 계성학교 입학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교회 종을 치고 소제(청소)를 하게 해주시오.”
나이 스물다섯, 천신만고 끝에 학교 졸업
또 하나의 큰 뜻
‘나라를 구하고 싶다.’
형무소 간수에게 맞아 터져버렸던 고막. 잘 들리지 않던 오른쪽 귀를 당신은 ‘독립운동 기념’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나긴 옥고를 치르고도, 당신은 대한해협을 건너서까지 부지런히 겨자씨 한 알 한 알을 심으셨습니다.
(‘빈민가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의 모교, 고베신학교에 유학)
“남이 아니하는, 남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봉사, 벙어리 사업, 정신박약자 사업, 특수교육”
말 못 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앞 못 보는 이들에게 당신은 빛을 주셨습니다. 몸 불편한 이들에게 당신은 자유를 주셨습니다.
(1946. 4. 19 대구맹아학원 설립)
(1955년 4월 대구맹아학교 교사 신축)
이웃들로부터 버림받은 오갈 곳 없는 한센인들, 낮은 곳에서 당신은 그들의 벗이 되어주셨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대구 애락원)
비참한 한국전쟁, 당신을 끌고 갔던 북한군도 차마 당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죽일 수 없는 사람’ 이영식
“나는 자식이 많습니다. 부디 공부 잘 하고, 어머니 잘 섬기고, 내가 못 다하고 가는 나병자(한센인) 사업, 봉사, 벙어리, 소아마비, 정신박약자 사업을 더 잘해서 이 세상에 사랑과 빛과 자유의 꽃을 피워달라고.”
대구대학교의 토대를 마련하신 이영식 목사
대를 이어 내려온 사회공헌, 특수교육진흥법 제정 기여, 전국 최초의 특수교육과 설치
대구대학교를 크게 발전시키신 이태영 초대 총장
한국 최초의 사립 특수학교에서 명문 사학으로 발돋움한 대구대학교
한국 최초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학 2011년 K-PAC센터 설립
시대를 앞서간 그 뜻, 이어가겠습니다.
(경산 캠퍼스 시대를 열다)
“나를 보고싶을 때 너희 자신을 봐라.”
“나를 사랑하고 싶을 때 너희 자신을 사랑하라.”
“너희 자신을 똑똑히 봐라.”
“그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태평양 사이판, 티니안 섬. 해외희생동포 추념사업.
나라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나서서 했던 이영식 목사
당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해외희생동포 유해 5천여구의 귀향)